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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 (기억의 설계도, 감정의 구조, 해외 관객의 방향)

by Luma 2025. 6. 7.

건축학개론 영화 이미지

시청 플랫폼 : 웨이브, 넷플릭스, 왓챠, 티빙, 애플티비

가. 기억의 설계도 –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마주한 감정

2012년 개봉한 〈건축학개론〉은 이용주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엄태웅, 한가인, 이제훈, 수지 등이 주연을 맡은 감성 멜로 영화다. 영화는 대학 시절 첫사랑의 기억을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그려내며, 잊혔다고 생각했던 감정이 얼마나 또렷이 남아 있는지를 섬세하게 담아낸다. 서연(한가인)은 제주도에 집을 짓기 위해 건축사무소를 찾아간다. 그런데 그곳에는 대학 시절 자신과 첫사랑의 감정을 나눴던 건축학과 선배 승민(엄태웅)이 있다. 어색한 재회 후, 두 사람은 과거의 기억과 마주하게 되고, 영화는 본격적으로 과거 회상을 통해 그 시절을 보여준다. 대학 시절, 승민(이제훈)은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건축학과 학생이고, 서연(수지)은 자유롭고 당당한 매력을 지닌 음악과 학생이다. 건축학개론 수업 조별과제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차츰 가까워지며 감정을 쌓아간다. 음악을 함께 듣고, 낡은 LP판을 찾아다니며, 순수하고 서툰 감정들이 점점 커져간다. 하지만 오해와 타이밍의 엇갈림으로 둘의 감정은 끝내 이어지지 못하고, 그렇게 첫사랑은 각자의 기억 속에 묻힌다. 현재로 돌아온 승민과 서연은 함께 집을 짓는 과정을 통해 그때 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되짚고,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조용히 확인한다.

나. 감정의 구조 – 말하지 못한 사랑, 그리고 성장

영화 속 승민은 두 시점으로 나뉜다. 젊은 시절의 승민은 감정 표현에 서툴고, 늘 조심스럽지만, 마음속엔 깊은 감정이 흐른다. 이제훈은 그런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연기하며, 풋풋하고 진실한 첫사랑의 남자 주인공을 완성시킨다. 반면, 현재의 승민(엄태웅)은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고 어느 정도는 정리한 듯하지만, 서연과의 재회 앞에서 다시 흔들린다. 서연 역시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가 다르다. 젊은 서연은 자신감 있고 호기심 많은 인물로, 사랑에 있어서도 주도적인 모습을 보인다. 수지는 이 캐릭터를 순수함과 생동감으로 채우며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냈다. 반면 현재의 서연(한가인)은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등장하지만, 그 내면에는 과거에 대한 미련과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두 인물은 서로의 변화된 모습에 놀라면서도, 과거의 기억을 통해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건축이라는 소재는 영화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이들의 감정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설계도처럼 치밀하게 쌓인 감정, 무너지고 다시 쌓는 기억의 구조물이 영화 전체에 걸쳐 교묘히 배치되어 있다. 조연 인물들도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특히 조정석이 연기한 ‘납득이’는 유쾌한 현실감을 부여하며 관객에게 여유를 제공하고, 승민의 성격을 더 분명하게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인물 하나하나가 감정의 층위를 담당하며 전체적인 서사를 단단하게 만든다.

다. 해외 관객의 방향 – 한국식 멜로의 정수

〈건축학개론〉은 국내에서 4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멜로 영화로는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홍콩 등 아시아권에서도 소개되어 첫사랑을 다룬 보편적 감성으로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일본에서는 ‘사랑이 끝나지 않은 이들을 위한 영화’라는 문구로 소개되었고, “첫사랑의 감정을 가장 정제되고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수지의 연기와 감성적인 영상미, 음악 등 한국 영화 특유의 감수성이 호평을 받았으며, 일부 극장에서는 재상영 요청이 이어지기도 했다. 대만과 홍콩에서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영화’라는 반응과 함께, 현대적인 삶 속에서 잊고 있던 감정을 되살리게 해준다는 관람 후기가 많았다. 특히 기억과 공간의 연결을 중심으로 한 연출 방식은 관객들에게 감정적 몰입을 극대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건축학개론〉은 비단 첫사랑의 아름다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기억하는 우리의 태도,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감정의 흔적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한국적 멜로 감성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며, 전 세계 관객들에게도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