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하루의 기록 – 1979년 10월 26일, 그날의 전말
〈그때 그 사람들〉은 2005년 개봉한 임상수 감독의 작품으로,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시해한 사건을 영화적으로 재구성한 블랙코미디 드라마다. 실제 정치사에서 ‘10.26 사건’으로 불리는 이 하루의 사건을, 제한된 시공간과 허구적 장치들을 통해 풍자적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는 대부분의 시간을 궁정동 안가라는 좁은 공간에서 진행된다. 주인공 ‘김 부장’(백윤식)은 압도적인 권력을 지닌 대통령 ‘박통’(송재호)에게 불만을 품고 있지만,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갈등과 굴욕의 누적 끝에 김 부장은 결국 권총을 들고 박통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등장인물들은 실명을 피하고 암시적 명칭만 사용되지만, 그 실체는 명백히 실존 인물들을 모델로 한다. 이러한 방식은 영화가 단순한 재연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부패와 몰락, 그리고 역사적 아이러니에 대한 날카로운 해석임을 말해준다. 영화는 장중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냉소적 유머와 아이러니를 활용한다. 어두운 조명과 폐쇄된 공간 속 인물들의 행동은 점점 광기와 공포, 그리고 인간적 비극을 뒤섞으며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사건이 발생하는 날의 정적과 폭력성은 한국 현대사의 가장 상징적인 하루를 극대화시킨다.
b. 권력의 이면 – 충성, 이념, 그리고 개인의 한계
‘김 부장’은 체제의 핵심에 있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체제를 무너뜨린 인물이다. 백윤식은 이 복잡한 내면을 가진 인물을 냉정하고 절제된 연기로 표현하며, 인간성과 정치성, 충성과 반역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세밀하게 전달한다. 그는 결코 완전한 영웅도, 단순한 배신자도 아닌, 시대의 희생자처럼 그려진다. ‘박통’은 절대 권력을 상징하지만, 영화에서는 오히려 권력의 공허와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강조한다. 송재호는 근엄하지만 현실과 단절된 지도자의 모습으로 박통을 표현하며, 그 권력이 얼마나 허약하고 고립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비서실장, 경호실장, 수행원 등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체제에 순응하고 충성을 강요받는다. 이들은 권력 앞에서 인간성을 버리거나, 불안 속에서 침묵하며 하루를 보낸다. 영화는 이들의 모습 속에서 권력 구조 내부의 위계와 공포, 그리고 도의적 마비 상태를 들춰낸다.
〈그때 그 사람들〉은 인물 하나하나를 통해 권력의 작동 방식을 실감 나게 묘사한다. 단지 ‘한 사람의 총성’이 아닌, 그것이 가능하게 만든 시대적 공기와 심리적 압박을 함께 풀어낸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역사극이 아닌 심리극으로도 읽힐 수 있다.
c. 해외의 해석 – 블랙코미디 속 한국 현대사의 그림자
〈그때 그 사람들〉은 국내에서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일부 상영 제한과 법적 제재를 받았지만, 해외에서는 오히려 예술적 완성도와 사회적 풍자의 깊이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다. 해외 평단은 이 작품을 ‘한국 현대사에 대한 용기 있는 해석’으로 보았다. 권력의 무상함과 인간 군상들의 비극이 시적이면서도 풍자적으로 그려졌다는 점에서, 쿠브릭이나 코폴라식 정치 영화와 비교되기도 했다. 특히 제한된 시공간 속에서 감정과 사건이 폭발하는 방식은 무대극을 보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일본, 프랑스, 미국의 비평가들은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로 정치적 비극을 표현하는 독창적인 방식”이라고 평가하며, 한국 영화의 표현 자유와 창의성에 주목했다. 또한, 실화 기반임에도 불구하고 영화적 허구를 통해 역사적 진실을 더 넓은 시각에서 성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때 그 사람들〉은 단순한 정치 드라마가 아닌, 시대정신을 묻는 영화다. 권력의 중심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여전히 마주해야 할 질문들을 조용하지만 뼈아프게 던진다. 오히려 외면당했던 이 작품이 시간이 지나며 다시 조명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